불순종에 대한 경고
신명기 6장 10-25절은 "모든 부요함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기억하며 교만을 꺾고, 우리를 죄와 속박에서 구원하신 여호와의 선행적 은혜에 근거하여 자녀 대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발적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라"는 거룩한 명령이자 축복의 이정표입니다.
말씀 요약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 건축하지 않은 성읍, 세우지 않은 집, 파지 않은 우물, 심지 않은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차지하고 배불리 먹게 될 때를 대비하여 내리시는 하나님의 강렬한 경고와 지침입니다. 모세는 백성들에게 배부르고 풍요로울 때 자고하여 자신들을 이집트의 종 되었던 집에서 구원해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라고 권고합니다. 여호와만을 경외하고 섬기며, 그 사면에 있는 이방의 백성들의 다른 신들을 따르지 말아야 하는데, 이는 그들 중에 계신 여호와 하나님이 언약적 정절을 요구하며 배신을 불허하시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스라엘은 과거 광야 여정 중 마실 물이 없어 불평하며 원망했던 맛사(Massah)에서처럼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고, 그분이 명령하신 증거와 규례를 삼가 지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고 선량한 일을 행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약속된 좋은 땅을 얻고 대적을 쫓아내리라는 조상들의 맹세가 성취될 것입니다.
아울러 모세는 다음 세대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합니다. 후일에 자녀가 "하나님이 주신 명령과 규례와 법도가 도대체 무슨 뜻입니까?"라고 물을 때, 부모는 장황하고 딱딱한 교리적 정의가 아니라 "우리가 옛적에 이집트 바로의 노예였을 때, 여호와께서 권능의 손과 크고 두려운 이적으로 우리를 인도해 내셨다"는 구원의 살아 있는 역사를 간증해야 합니다. 이 모든 규례를 지키라 하신 목적은 백성을 억압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여 항상 복을 누리게 하고 오늘날과 같이 그들의 생명을 보존하여 살게 하려 하심입니다. 부모와 자녀가 이 명령을 여호와 앞에서 삼가 지키는 삶 자체가 그들의 참된 의로움이 될 것입니다.
말씀의 배경
목축업(광야)에서 농경사회(가나안)로의 패러다임 전환
본문이 선포되는 역사적 시점은 광야 40년의 혹독한 훈련을 통과한 출애굽 제2세대가 가나안 본토 진입을 목전에 둔 요단강 동편 모압 평지입니다. 단순한 지리적 이동을 넘어, 삶의 기반 전체가 통째로 바뀌는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 의미합니다. 광야에서의 삶은 전형적인 유목적 삶이었습니다.매일 아침 내리는 만나와 불기둥, 구름기둥을 보며 하루 단위(Daily Manna)로 하늘만 바라보고 즉각적으로 여호와를 의지해야 살 수 있는 의존적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건너가 차지할 가나안 땅은 정착형 농경사회입니다. 농업 사회의 특징은 1년 단위(Yearly Cycle)의 산업 사이클을 가지며, 파종과 추수의 단계를 거쳐 연봉이나 축적된 재화의 개념을 유발한다는 점입니다. 곡식을 창고에 쌓아두고, 스스로 판 우물에서 물을 기르며, 대를 이어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가꾸는 풍요의 삶이 시작되면, 인간은 아주 자연스럽게 자급자족(Self-sufficiency)의 허상에 빠지게 됩니다.
모세는 바로 이 지점을 우려했습니다. 그들이 직접 농사짓지 않고도 이미 가나안 족속들이 일구어 놓은 건축된 성읍, 풍성한 가구로 채워진 집, 이미 파여진 우물, 이미 자란 포도나무와 감람나무를 거저 얻어 "배불리 먹게 될 때",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베풀어 주셨던 만나의 은혜를 망각할 위기에 노출됩니다. 풍요로움이 신앙을 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무서운 도구가 될 수 있음을 간파한 모세는 임종 직전 애가 끓는 심정으로 이 경고의 설교를 선포한 것입니다.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의 신학적 전복: 에살핫돈의 왕위계승조약
신명기 6장의 신학적 구성은 당시 고대 근동을 제패하고 이스라엘을 압박했던 신앗시리아 제국의 세계지배 이데올로기와 강력한 정치적·종교적 마찰을 빚고 있습니다. 최근 고고학적 연구에 따르면, 신명기 6장의 사랑(Ahab)과 배타적 정절에 대한 명령은 기원전 7세기 앗시리아의 대왕 에살핫돈이 봉신(Vassal)들에게 강요했던 에살핫돈의 왕위계승조약(Esarhaddon's Succession Treaty, EST)의 형식 및 용어와 밀접한 문학적 관련성을 가집니다. 에살핫돈의 조약 제24조(266-268행)에는 봉신국들을 향해 "너희는 앗시리아의 황태자 아슈르바니팔을 너희의 목숨(soul)과 같이 사랑하라(tar-ʾa-ma-a-ni)"고 엄히 명령합니다. 당시 고대 근동에서 사랑이란 단순한 감정적 이끌림이 아니라, 오직 한 명의 종주(Suzerain)만을 절대적으로 따르고 배타적인 충성을 바치는 외교적, 정치적 서약이었습니다.
신명기의 저자들은 앗시리아 제국이 피지배국 백성들의 혼과 생명을 억압하기 위해 사용했던 이 제국주의 조약의 수사학을 파격적으로 수용하여 역이용했습니다. 즉, 이스라엘이 온 마음과 뜻(혼)과 힘을 다해 사랑해야 할 진짜 대왕(Great King)은 앗시리아의 황제나 바알 같은 이방 신들이 아니라, 오직 자신들을 종살이하던 이집트에서 해방하신 여호와 한 분뿐이라는 고백입니다. 이것은 앗시리아의 정치적 압제 속에서 여호와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벌인 처절한 정치신학적 저항이자, 세상의 가장 강력한 지배 도구를 여호와께 바치는 최고의 충성 서약으로 전복시킨 거룩한 신앙 운동이었습니다.
심층 Q & A
왜 성경은 이스라엘이 스스로 일하지 않고 거저 얻은 풍요 속에 처할 때 특히 더 조심하라고 경고하는 것인가요?
본문은 "네가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아름다운 성읍을 얻게 하시며... 네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네가 배불리 먹게 하실 때에" 너는 조심하라고 선포합니다. 인간의 가장 큰 영적 취약점은 고난과 결핍의 순간이 아니라, 모든 것이 내 뜻대로 잘되고 풍요로워지는 성공의 순간에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광야에서는 매일 만나를 보며 내 힘으로 살 수 없음을 고백했지만, 가나안의 견고한 집과 성읍에 정착하게 되면 인간은 속으로 "내가 이 부를 얻은 것은 내 힘과 내 손의 능력 때문이다"라고 생각하며 교만의 늪에 빠지게 됩니다. 가나안의 무노동적 풍요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의 선물(Grace)임에도 불구하고, 소유의 넉넉함이 주는 안락함은 은혜를 '나의 공로와 자격'으로 착각하게 만듭니다. 재물은 풍요를 주지만 동시에 하나님을 기억하는 기억 장치를 심각하게 마비시킵니다. 그렇기에 성경은 물질적 번영을 누리는 그 황금의 때에 오히려 가장 긴장하여 영적 안전벨트를 매고 "재물 얻을 능력(힘)을 주신 이가 오직 여호와이시다"라는 고백을 놓치지 말라고 강하게 도전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성품적 묘사는 편협하고 부정적으로 느껴지는데, 이 단어에 담긴 참뜻은 무엇인가요?
신명기 6장 15절은 "너희 중에 계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명시합니다. 성경에서 '질투(Jealousy)'를 뜻하는 히브리어 '카나(Qanna)'는 인간적인 시기심이나 소유욕에서 비롯된 옹졸한 감정이 아닙니다. 이 질투는 시내산 언약의 본질이 여호와와 이스라엘 간의 독점적 결혼 관계라는 데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여호와는 구약 선지자들을 통해 출애굽과 시내산 언약 사건을 "우리의 신혼 시절의 사랑"이라고 부르시며 자신을 이스라엘의 신랑으로 묘사하셨습니다. 결혼한 부부 관계에서 배우자가 다른 사람과 바람을 피우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정절을 요구하는 것은 편협함이 아니라 결혼을 유지하는 거룩한 사랑의 본질입니다. 고대 근동의 이방 신들은 변덕스럽고 일관성이 없어 백성들을 늘 불안하게 만들었으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오직 자신의 신부인 이스라엘만을 온전히 사랑하시며 동일한 정절의 사랑을 요구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질투는 우리를 옭아매는 무서운 감옥이 아니라, 신부인 이스라엘이 우상숭배라는 영적 간음과 파멸의 길로 걸어가지 않도록 보호하시려는 가장 뜨겁고 강력한 불타는 사랑(Covenant Love)의 표현인 것입니다.
"맛사(Massah)에서 시험한 것 같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맛사 사건의 본질과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경고는 무엇인가요?
맛사(Massah)는 시험하다라는 뜻을 가진 르비딤 광야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출애굽 직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실 물이 없자 모세를 원망하며 돌로 치려 했고,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라며 하나님을 직접 시험하고 의심했습니다. 하나님을 시험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신 성품과 능력을 신뢰하지 못하고, 내가 원하는 때에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초자연적인 기적을 보여주어 "내 요구를 들어주어야만 하나님으로 인정하겠다"고 협박하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입니다. 이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질서를 뒤엎는 사악한 반역입니다.
예수님께서 사탄에게 광야 시험을 받으실 때, 눈에 보이는 화려한 슈퍼스타가 되라는 유혹에 맞서 바로 이 신명기 6장 16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라"을 인용하여 사탄의 머리를 깨뜨리셨습니다. 우리는 내 삶의 기도가 거절당하거나, 광야 같은 결핍의 상황이 올 때 쉽게 여호와의 계심을 의심하며 시험의 도마 위에 하나님을 올려놓습니다. 맛사의 시험을 멈추는 유일한 길은,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언약적 사랑을 굳게 믿고 묵묵히 신뢰하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존 칼빈(John Calvin)이 주창한 기독교인의 자유 관점에서 볼 때, 율법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기독교인의 자유와 모순되지 않나요?
칼빈은 그의 대작 《기독교 강요》 제3권 19장에서 기독교인의 자유를 심도 있게 논하며 이 질문에 명쾌하게 답합니다. 칼빈에 따르면 기독교인의 자유의 첫째 부분은 구원을 얻기 위해 율법의 행위와 조건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의 의에 의해서만 양심이 평안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율법을 무시하고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는 방종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자유를 얻은 신자의 양심은 이제 율법의 저주와 정죄라는 무서운 공포에 떠밀려 억지로 의무를 행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용납되고 사랑받는 자녀가 되었기에, 비록 자신의 행함이 연약하고 불완전할지라도 아버지가 기쁘게 받아주실 것을 신뢰하며 자발적이고 기쁜 마음으로 순종하게 됩니다. 마치 가혹한 주인 앞의 노예(종)는 조금만 실수해도 매를 맞을까 두려워 전전긍긍하지만, 사랑이 넘치는 아버지 앞의 아들은 흠이 있고 서툰 일이라도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 기꺼이 순종하는 것과 같습니다. 즉, 참된 신앙의 순종은 자유의 박탈이 아니라, 구원의 자유를 얻은 자가 신랑 되신 하나님을 너무나 사랑하기에 기쁨으로 복종하는 지고한 사랑의 자발적 표현입니다.
자녀가 "하나님이 주신 이 증거와 규례가 무슨 뜻인가요?"라고 질문할 때, 교리가 아닌 '출애굽 구원 사건'의 이야기(Story)를 들려주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신명기 6장 20-21절은 후일에 자녀가 규례의 뜻을 물을 때, 부모는 "우리가 옛적에 이집트에서 바로의 종이 되었더니 여호와께서 권능의 손으로 우리를 이끌어 내셨다"는 구속의 패밀리 히스토리(Family History)를 들려주라고 명령합니다. 자녀 교육에 있어 딱딱한 추상적 교리나 기계적인 "하라/하지 말라" 식의 규칙 나열은 자녀의 영혼을 억압하고 신앙에 대한 거부감을 유발합니다. 신앙 전수의 핵심은 율법이라는 의무의 족쇄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이 법을 지켜야만 하는 선행적 구원의 사랑을 깨닫게 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본래 노예였고, 죽을 수밖에 없는 비참한 존재였으나 하나님의 압도적인 은혜로 구원받아 자유인이 되었다"는 살아 있는 이야기를 부모의 인격적인 목소리와 삶을 통해 생생하게 들려줄 때, 자녀들은 율법이 자신들을 속박하는 도구가 아니라 구원받은 자가 마땅히 걸어가야 할 행복의 안전망임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이야기(Story)는 머리가 아닌 심장을 울리며, 세대와 세대를 잇는 강력한 믿음의 전수 도구가 됩니다.
깊이 있는 신학적 묵상
율법의 본질: 번영의 안전망이자 사랑의 응답
기독교 역사 속에서 수많은 사람이 구약의 율법을 차갑고 무거운 돌판처럼 여겨왔습니다. 그러나 신명기가 선포하는 율법의 본질은 전혀 다릅니다. 가나안이라는 찬란하지만 극도로 음란하고 난잡한 우상숭배의 유행 속에서,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상에 오염되지 않고 거룩한 천국 백성의 품격과 의로움을 지키며 살아가도록 보살피시는 영혼의 안전 가이드이자 은혜의 울타리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자격을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의 수가 많거나 능력이 뛰어나서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 오직 그들을 향한 거절할 수 없는 압도적인 사랑 때문에 먼저 다가와 피로 맺은 언약의 백성 삼아주셨습니다. 따라서 신명기 6장 10-25절이 명하는 순종의 삶은 복을 받아내기 위해 하나님을 거래 대상으로 삼는 기복적 청구서가 아닙니다. 이미 헤아릴 수 없는 놀라운 구원의 복과 은혜를 과분하게 얻은 자가 신랑 되신 하나님을 향해 올려드리는 열렬하고도 당연한 사랑의 고백이자 거룩한 응답입니다.
"그때 너는 멋졌단다" — 시제가 과거형이 되는 비극을 넘어서
예레미야서 2장 2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광야 시절을 놀랍게도 "내가 너를 위해 네 소년 때의 인애와 네 신혼 때의 사랑을 기억하노니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그 광야에서 나를 따랐음이니라"며 가장 아름다운 신혼 시절로 회상하십니다. 비록 이스라엘은 원망과 불평으로 점철된 척박한 광야를 지나왔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주님이 가라 하시면 가고, 멈추라 하시면 멈추며 오직 주님만 바라보았던 그 첫사랑의 순수함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의 수많은 선지서를 읽다 보면 가슴 깊은 통증을 느끼게 되는 대목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향해 사랑을 고백하거나 그들의 아름다운 신앙을 언급하실 때 사용하는 동사들의 시제가 예외 없이 과거형이라는 점입니다. "너 옛날에는 참 나를 뜨겁게 사랑했었지", "그 광야 시절에 너는 참 이쁘게 나를 따랐단다"라는 하나님의 절절한 고백은, 역설적으로 '현재'에는 그 사랑이 완전히 식어버렸음을 증명하는 슬픈 과거로의 여행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이 비극적 양상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모임이나 셀예배에서 나누는 은혜의 고백들이 대개 "내가 처음 예수 믿었을 때", "과거 청년 시절 밤새며 기도하고 눈물 흘렸을 때"라는 케케묵은 과거의 역사책 속에 갇혀 있지는 않습니까? 만나(Manna)는 하루가 지나면 썩어 냄새가 났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받았던 만나의 추억으로 오늘을 연명할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제 내린 구름의 흔적이 아니라, 매일 아침 새롭게 내리는 현재진행형의 새 만나와 오늘 나와 동행하시는 여호와의 뜨거운 첫사랑입니다. 과거의 영광에 안주하는 박제된 신앙을 찢어버리고,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주님, 내가 오늘 전심을 다해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는 현재의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삶으로의 실제적인 적용
적용 1. 번영과 부유의 때에 '재물 얻을 능력'을 주신 여호와를 선포하기
우리의 삶에 안락함이 찾아오고 비즈니스가 성공하며 통장의 잔고가 늘어날 때, 기독교인들이 가장 먼저 무너뜨려야 할 것은 자수성가(Self-made)의 신화와 교만입니다. 우리는 내가 머리가 좋아서, 남들 잘 때 잠자지 않고 15시간씩 피땀 흘려 노력해서 이 부를 일구어냈다고 자랑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고 엄히 선포합니다. 그렇게 밤새워 일할 수 있는 건강한 심장과 폐를 유지시켜 주신 분이 누구입니까? 결정적인 순간에 비즈니스의 탁월한 아이디어와 지혜를 머릿속에 던져주시고 계약을 성사시킬 수 있는 만남과 상황을 조율해 주신 분이 누구입니까?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성공의 가도를 달릴 때, 스스로 정직하게 고백하십시오. "이 모든 아름다운 집과 우물과 포도원은 내 공로가 아니요, 오직 하나님께서 내게 부를 얻을 수 있는 힘과 지혜와 생명을 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겸손하고 정직한 고백만이 우리를 풍요의 저주와 타락으로부터 지켜주는 영적 파수꾼이 될 것입니다.
적용 2. 자녀의 신앙 교육을 방임하지 않고 부모가 직접 가정 제사장'으로 서기
많은 기독교인 부모들이 자녀의 학업을 입시 학원에 전적으로 의지하듯, 자녀의 신앙 교육마저 주일학교 부서나 교회 프로그램에 완전히 떠넘긴 채 방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신앙 전수의 1차적 책임과 권위가 교역자가 아니라 오직 부모에게 있다고 명시합니다. 부모가 일상의 삶 속에서 신앙의 모범을 보이지 않으면서 자녀에게 신앙생활을 강요하는 것은 자녀들에게 신앙을 가장 고통스럽고 억압적인 잔소리로 왜곡시키는 주범입니다. 이제 자녀들과의 소통의 맥락(Context)을 복원하십시오. 소통이 막힌 상태에서 갑자기 "너 커서 신앙생활 어떻게 할 거니?"라는 거창한 질문은 대화의 거리를 더 멀어지게 만듭니다. 부모의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 오늘 하루 동안 하나님께서 어떻게 기도를 들어주시고 위로해 주셨는지에 대한 고백적인 나눔에서부터 편안하게 이야기를 시작하십시오. 부모가 직접 하나님의 구원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식탁에서 따뜻하게 소리 내어 자녀를 축복하며 기도해 주는 일상의 경건(식사 기도, 취침 전 축복 기도)을 회복할 때, 가정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은 성소이자 교회로 변형될 것입니다.
적용 3. 일상에서 "정직하고 선량한 일"을 실천하는 공의의 삶 일구기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고 선량한 일"을 행하라는 것은 교회 안에서의 예배적 영역에 갇힌 종교적 경건을 넘어, 일상생활과 일터 속에서 공의와 정의를 실천하는 정직한 삶으로 뻗어가야 합니다. 신명기 법전은 무겁고 가벼운 두 종류의 저울추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거나, 크고 작은 되를 집에 두고 거래 상대방을 기만하는 비즈니스 방식을 강력하게 규탄합니다.
세상의 수많은 비즈니스가 "관행"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세금을 탈루하고, 거래처를 속이며, 불의한 이익을 취합니다. 그러나 참된 믿음의 백성은 눈앞의 단기적 이익보다 여호와의 정직하고 공평하신 저울추를 비즈니스의 절대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일꾼의 품삯을 미루지 않고 정직하게 지급하며, 약자를 억압하지 않고 공평하게 대하는 정직한 정체성만이 세상 속에서 "저들은 과연 지혜롭고 슬기로운 백성이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자녀들이다"라는 거룩한 칭송과 선교적 열매를 맺게 할 것입니다.
은혜를 구하는 간절한 기도문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우리를 보배로운 백성 삼으신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옛적에 죄의 노예가 되어 영원한 파멸의 그늘 아래 살아가던 비참한 존재였음을 고백합니다. 그 비참함 가운데 권능의 손과 강한 팔로 우리를 친히 건져내시고, 아들의 고귀한 피값으로 우리를 자유케 하사 하나님 나라의 보배로운 자녀 삼아주시니 그 한없는 은혜에 무한한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주님, 간절히 구하옵나니 우리의 삶이 풍요로워지고 평안이 찾아올 때, 배부름에 도취되어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의 은혜를 잊어버리는 패역함을 범치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 힘과 내 손의 능력으로 이 부를 얻었다" 속삭이는 세상의 교만하고 거짓된 우상을 단호히 꺾어버리게 하시고, 우리의 손에 쥐어진 모든 재물과 건강과 지혜가 오직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재물 얻을 능력에서 비롯되었음을 매 순간 겸손히 고백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의 첫사랑의 시제가 결코 과거형에 머무르지 않기를 소원합니다. 과거의 뜨거웠던 기억만으로 오늘을 게으르게 연명하는 자들이 아니라, 매일 아침 새롭게 공급되는 은혜의 만나를 먹으며 '오늘 현재의 삶'에서 온 마음과 혼과 힘을 다해 주님을 열렬히 사랑하는 신실한 신부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가정을 거룩한 교회이자 성소로 세우기를 원합니다. 부모인 우리가 먼저 여호와의 생명의 법을 마음에 깊이 새기게 하시고,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주님의 놀라운 구원 사건의 이야기를 인격적인 목소리와 온화한 인품으로 부지런히 전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다음 세대들이 가나안 같은 험난한 유행 속에서도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오직 주님만을 신뢰하며 생명과 복을 대대로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우리의 일터와 가정을 정직한 여호와의 저울추 위에 올려놓습니다. 세상의 거짓된 방식과 타협하지 않고 여호와 보시기에 올바르고 선량한 일을 묵묵히 행하게 하사,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공의가 이 땅에 밝히 증거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사랑하사 끝까지 신실하게 언약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한 문장 요약
구원받은 은혜를 늘 기억하며, 풍요 속에서도 교만을 꺾고 오직 하나님만을 전심으로 사랑하며, 이 생명의 이야기를 다음 세대에게 신실하게 대물림하는 가정과 삶이 되십시오.
#신명기 6장 해석, #신명기 6장 10-25절, #쉐마 신앙교육, #자녀 신앙 교육, #기독교인의 자유, #맛사 사건, #재물 얻을 능력, #질투하시는 하나님.

Social Plugin